토지거래허가제 번복에 급등한 강남 아파트, '규제 학습효과'의 힘


잠실 대장아파트, 다시 뛰었다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 시장이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KB 선도아파트 50지수는 108.8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3.42% 상승했는데요, 이는 2019년 12월 이후 무려 5년 3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입니다. 특히 이러한 상승세는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와 재지정이라는 정책 번복 과정에서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규제가 풀리면 빠르게 움직이고, 다시 규제가 강화될 것 같으면 서둘러 매수에 나서는 '규제 학습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데요. 오늘은 이런 시장 움직임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달 만에 수억 원 오른 강남 아파트

지난해부터 송파구 잠실의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아파트 매수를 알아보던 A씨는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소식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런데 규제가 풀리자마자 가격이 수억 원씩 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조급해졌죠. 더 놀라운 것은 한 달 만에 다시 송파구가 토허구역으로 재지정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다시는 없을 가격의 급매"라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A씨는 남편을 설득해 급하게 계약서를 썼습니다.

이처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재지정이 맞물리며 강남 고가 아파트 시장에 '매수 러시'가 나타났습니다. 특히 2020년 이후 토허구역으로 묶여 있던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에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투자 방식)가 허용되자, 여유 자금과 기존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이 서둘러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KB 선도아파트 50지수로 본 시장 변화

이러한 움직임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3월 'KB 선도아파트 50지수'는 108.8을 기록해 전달 대비 3.42% 상승했습니다. 이는 2019년 12월 이후 5년 3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으로, 당시는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급등이 나타나던 시기였습니다.

KB 선도아파트 50지수는 매년 말 기준 시가총액 50개 단지의 아파트를 선정해 시가총액 변동률을 지수화한 것입니다. 이른바 '대장 아파트'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지표로, 한국 부동산 시장의 '온도계' 역할을 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 50개 단지 중 32개(64%)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토허구역 해제와 재지정이 있었던 잠삼대청이 속한 강남구에서 13개 단지, 송파구에서 12개 단지, 서초구에서 7개 단지가 이 지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수의 급등은 지난달 이 지역에서 고가 거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제와 시장 간의 숨바꼭질

이 지수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부 정책과 시장 간의 미묘한 관계가 보입니다. 2021년 말까지 꾸준히 오르던 지수는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2022년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후 오르내림을 거듭하다가 고가 시장에서 부동산 가격 반등이 나타난 2024년 4월부터 12개월 연속 상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은행별 대출 규제가 일시적으로 완화된 지난해 여름, 지수가 급등했다는 사실입니다. 2024년 8월 전달 대비 2.46% 상승한 99.2를 기록했고, 9월부터는 100을 넘어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말 갑작스러운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전국적인 '거래 절벽'이 나타났을 때도, 이 지수에 포함된 아파트들은 오히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가격이 더 올랐습니다.

'규제 학습효과'가 만든 시장 심리

전문가들은 지난 3월 KB 선도아파트 50지수가 급등한 원인으로 토허구역 해제 번복 등 '불안정한 제도'를 꼽습니다. 이른바 '규제 학습효과'가 작용한 것인데요, 이는 과거 규제 경험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형성한 행동 패턴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규제가 완화되면 '곧 다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서둘러 매수에 나서고, 규제가 강화되기 직전에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리로 또다시 매수 열풍이 불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런 학습효과는 정책의 빈번한 변경과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실제로 A씨의 사례처럼, 토허구역 해제 후 가격이 오르자 매수를 망설이다가, 재지정 소식이 들리자 "다시는 없을 가격"이라는 중개업소의 설득에 급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살 수 있을 때 사자"라는 심리가 시장에 퍼져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시장 전망과 시사점

이러한 현상은 단기적으로는 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규제 변경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커질수록 실수요자들은 적정 시점을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수익에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규제 학습효과는 정책 효과를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규제의 패턴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정부가 의도한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금리 정책과 규제 변화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금리 인하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제 완화가 이루어진다면 고가 아파트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띨 수 있습니다. 반면, 규제가 다시 강화된다면 단기적으로는 '마지막 기회' 심리에 따른 거래 증가가 있을 수 있으나, 이후에는 거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입니다. 부동산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정책 변화보다는 시장 상황을 고려한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운용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규제 학습효과'에 따른 비정상적인 시장 움직임이 줄어들고, 실수요자 중심의 안정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을 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장과 정책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현명한 의사결정의 첫걸음이라는 점입니다. '규제 학습효과'가 만든 현재의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냉정한 판단으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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