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20년 민간임대 제도, 전월세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까?

 

20년 살 수 있는 집, 기업이 책임진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기업형 20년 민간임대' 제도가 드디어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이 제도가 최근 민주당 내에서도 보완 법안이 발의되면서 법안 통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전월세 시장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오늘은 '기업형 20년 민간임대' 제도의 주요 내용과 그 파급효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업형 20년 민간임대란 무엇인가?

최근 염태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서비스 제공형 20년 민간임대주택'은 부동산투자회사(리츠)가 다양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100가구 이상의 주택을 최소 20년 동안 임대로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을 말합니다. 현재 장기민간임대주택의 최소 임대 기간이 10년인 것을 고려하면, 임대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임대사업자가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때 임대료를 새롭게 책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100가구 이상을 임대하는 기업형 임대사업자가 새 임차인을 받을 때에도 지역 주거비 물가지수 상승률 내에서 최대 5%까지만 임대료를 올릴 수 있습니다. 이 규제가 민간임대 기업의 수익성을 제한하는 '킬러 규제'로 여겨졌는데, 이번 개정안은 20년 이상 장기 임대를 조건으로 이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제도가 필요한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대 주택의 77.5%(2023년 기준 664만 호)가 민간임대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부분이 개인 간 거래에 의존하다 보니 최근 크게 늘어난 전세사기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기 임대 중심의 시장 구조로 인해 임차인들의 주거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형 장기 임대 시장을 육성하고자 합니다. 전문적인 임대 기업이 장기간 책임지고 주택을 관리하면 임차인들이 더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전세 사기와 같은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입니다. 또한 주거 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왜 논의가 지연됐나?

정부는 지난해 8월 '신유형 장기민간임대' 제도 도입 계획을 밝히고, 10월에 관련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이 여러 우려를 제기하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임대료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과 임대 기업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실제로 과거 박근혜 정부 시기에 도입된 '뉴스테이'(최장 8년 거주 기업형 임대주택) 제도는 초기 임대료 규제가 없어 고소득자만 입주한다는 비판을 받다가 2018년 사실상 폐지된 바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전세 제도가 국민 자산 증대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어, 월세 중심의 민간임대 산업을 급격히 확대할 경우 국민적 저항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습니다.

민주당의 대안, 무엇이 달라졌나?

최근 발의된 염태영 의원의 개정안은 기존 우려 사항을 보완하여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리츠(부동산투자회사)만 20년 장기임대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점입니다. 리츠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수익을 배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임차인도 간접적으로 임대 운영 수익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또한 국토부는 정부 지원을 받는 사업자에 대해 최초 임대료를 시세의 95%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임대료 급등 우려를 불식시키고 서민 주거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업계의 반응과 시장 전망

부동산 업계는 이번 법안, 특히 '세입자 변경 시 임대료 상승 제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 민간임대기업 대표는 "임차인이 바뀔 때 임대료 상한을 두는 규제만 완화돼도 시장 확대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최근 모건스탠리,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등 해외 자본이 국내 임대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민간임대기업의 경쟁력을 키울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도 월세를 과도하게 책정하면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걸러진다"며 임대료 상승 우려가 과장되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임차인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임차인 입장에서 이 제도의 도입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거주가 가능해지고, 전문 기업이 관리하는 만큼 주거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전세사기와 같은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임대료 상승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비록 계약 기간 내에는 임대료 인상이 제한되지만, 임차인이 바뀔 때 임대료가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오를 수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임대 시장 전체의 임대료 수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

기업형 20년 민간임대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우선, 임차인 보호를 위한 장치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임대료 적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임대사업자의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리츠를 통한 임대 수익 공유 모델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 그리고 이것이 임차인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갈지도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전세 중심 문화에서 월세 중심으로의 전환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도 필요합니다.

국토부는 대선 정국이 마무리되면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 임대 주택 시장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민간임대 시장의 전문화, 기업화가 진전되고, 장기적으로는 임대 문화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만으로는 늘어나는 주택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민간 부문의 역할은 불가피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효율성과 임차인 보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기업형 20년 민간임대 제도가 우리나라 주택 임대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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