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해양관광단지, 20년의 꿈은 왜 멈춰 서는가

 

어촌마을 사진


푸른 바다가 펼쳐진 창원시 구산면 동산리. 이 조용한 어촌 마을이 화려한 관광단지로 변신할 거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건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호텔, 해양레저시설, 마리나항까지... 상상만 해도 설레는 계획이었죠. 그런데 최근 또다시 사업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이번엔 민간 사업자인 삼정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제동이 걸렸다고 합니다.

부동산 개발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저로서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왜 우리나라의 관광단지 개발이 이렇게 어려운지 고민하게 됩니다. 단순히 한 지역의 개발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미래가 걸린 문제니까요. 오늘은 구산해양관광단지 사례를 통해 지역 개발의 어려움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멈춤과 재시작'의 악순환

구산해양관광단지의 역사는 '멈춤과 재시작'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계획이 나온 건 2000년대 초반. 창원시 구산면 동산리 일대 222만 제곱미터(약 67만 평)의 부지에 해양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어요. 이 땅에 호텔, 콘도, 해양레저시설, 마리나항 등을 짓고 남해안 관광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구상이었죠.

그런데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업체가 자금 문제로 포기하면서 계획은 수년간 표류했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삼정기업이 새로운 사업자로 나서면서 다시 희망이 보이는 듯했어요. "이번엔 정말 될까?" 주민들은 조심스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어요. 최근 삼정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사업은 멈춰 섰습니다.

제가 얼마 전 구산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한 주민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우리 마을이 완전히 바뀔 거라고 기대했죠. 그런데 이제는 무슨 말이 나와도 '그냥 또 그러려니' 하게 돼요." 20년이 넘는 기다림 속에 희망보다는 체념이 깊어진 목소리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구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 비슷한 사례가 많아요. 화려한 청사진은 있지만, 실제로 완성되는 관광단지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왜 관광단지 개발은 반복해서 실패할까

관광단지 개발이 쉽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죠. 구산해양관광단지만 해도 총 사업비가 무려 5,000억 원이 넘는다고 해요. 이런 대규모 자금을 민간 기업 하나가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관광사업은 초기 투자 비용은 엄청나게 크지만, 수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나오는 구조라 투자 회수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둘째로, 각종 '인허가 절차'의 복잡함입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개발하려면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 수많은 평가를 거쳐야 하고, 여러 부처와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 곳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 일정이 지연되죠. 구산 사례에서도 여러 차례 인허가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었다고 합니다.

셋째, '시장 환경의 변화'입니다. 사업 계획 당시와 실제 개발 시점 사이에는 보통 수년의 시간 차가 있어요. 그 사이 부동산 시장 상황, 관광 트렌드, 금리 등이 크게 바뀌는 경우가 많죠. 구산해양관광단지도 처음 계획했을 때와 지금은 관광 패턴이나 선호도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대형 리조트나 골프장이 인기였다면, 요즘은 소규모 체험형 관광이나 친환경 여행이 트렌드거든요.

넷째, '지역적 한계'도 있습니다. 구산면은 아름다운 해안을 갖고 있지만, 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아요. 서울에서 오려면 4시간 넘게 걸리고, 가까운 부산에서도 1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또한 인근에 이미 잘 발달된 관광지인 통영, 거제, 여수 등이 있어 '왜 굳이 구산에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기 어렵죠.

이런 여러 장애물이 겹치면서, 화려하게 시작된 많은 관광단지 계획이 중간에 좌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없을까요?

해외는 어떻게 성공했나: 단계적 접근과 공공의 역할

사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닙니다. 해외 유명 관광지들도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어요. 그들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예를 들어, 스페인의 코스타 델 솔이나 호주의 골드코스트 같은 해변 관광지는 처음부터 거대한 계획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작은 규모로 시작해 성공을 거두면서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갔죠. 이런 '단계적 접근법'은 초기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시장 반응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다는 점이에요. 프랑스의 랑그독-루시용 지역 개발 사례를 보면, 정부가 먼저 도로, 상하수도, 전기 등 기본 인프라를 깔고, 토지를 정비한 후에 민간 사업자를 유치했어요. 기본 틀은 공공이 만들고, 그 위에 호텔이나 리조트, 상업시설 등은 민간이 개발하는 방식이죠.

반면 우리는 어떤가요?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 사업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민간 사업자가 흔들리면 전체 사업이 멈춰버리는 거죠. 창원시도 구산해양관광단지에 대해 "이번엔 어떤 민간 사업자를 찾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접근법이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 듭니다.

또한 해외 성공 사례에서는 '지역 참여'가 두드러집니다. 단순히 외부 자본이 들어와 개발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사업에 참여하고 혜택을 나눠받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아그리투리즘(농촌관광)은 대형 리조트 없이도 지역 농가들이 직접 숙박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성공적인 관광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구산의 미래, 어떻게 다시 그려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실패를 교훈 삼아, 구산해양관광단지의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단계적 개발'을 고려해볼 만합니다. 한 번에 222만 제곱미터 전체를 개발하려 하기보다, 핵심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해나가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해변 가까운 부지 일부에 소규모 숙박시설과 해양레저 체험장을 먼저 조성하고, 성공하면 차츰 확장해 나가는 겁니다.

둘째, '공공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창원시가 기반시설 조성과 토지 정비를 먼저 해놓고, 그 위에 민간 사업자를 유치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만합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부동산 개발 전문가들은 "공공이 기본 인프라만 잘 갖춰놓아도 민간 투자 유치가 훨씬 쉬워진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셋째, '지역 특성'을 살린 차별화된 콘셉트가 필요해요. 구산만의 독특한 매력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단순히 "바다가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이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적 특성을 살린 콘텐츠를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산 앞바다는 청정 해역으로 유명하다고 하니, 해양 생태 체험이나 수산물을 활용한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넷째, '지역 주민 참여'를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단순히 외부 자본이 들어와 개발하는 방식보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성이 높아요. 예를 들어 마을기업 형태로 소규모 체험 숙소를 운영하거나, 지역 어민들이 직접 해양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법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기존 계획보다 작게 시작하지만, 오히려 성공 가능성은 더 높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20년 넘게 기다려온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더 빨리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멈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며

구산해양관광단지의 긴 표류는 단순히 한 지역의 개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나라 관광 개발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화려한 청사진과 거대한 자본만이 답이 아닙니다.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관광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구산의 아름다운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마을 주민들도 변함없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들의 삶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이번 중단이 단순한 '또 하나의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산해양관광단지가 언젠가는 '실패로부터 배워 성공한 모델'로 기억되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열매는 무엇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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