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근처 오피스 빌딩이라면 '무조건 돈이 되는 부동산'이라는 공식이 있었습니다. 특히 강남, 광화문, 여의도처럼 대표적인 업무 중심지는 입주 대기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나 최근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서울 중심부 오피스 빌딩에서도 공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도심 외곽이나 신도시 지역에선 건물의 여러 층이 통째로 비어있는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역세권 건물조차 텅 비는 현상,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현실, 오피스 공실 증가 현상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코로나가 바꾼 업무 공간의 패러다임
"우리 회사도 이제 주 3일만 출근해요." "사무실 절반은 임대를 포기했대요."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들립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그 변화는 오피스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중심 비즈니스로의 전환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기업들은 빠르게 디지털 환경에 적응했습니다. 화상 회의, 클라우드 시스템, 원격 협업 툴 등이 일상이 되었고, 굳이 모든 직원이 한 공간에 모여 있을 필요성이 줄어들었죠. 과거에는 직원 100명이면 100명을 수용할 공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50~70명 정도만 수용해도 충분한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둘째,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입했던 재택근무가 이제는 회사의 정식 제도로 자리 잡은 곳이 많아졌어요. "월, 수, 금은 출근, 화, 목은 재택"과 같은 하이브리드 근무 모델이 표준이 되면서, 필요한 사무 공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핫데스킹'(지정 좌석 없이 필요할 때 자리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공유 오피스' 방식을 도입해 공간 효율을 높이기도 했고요.
셋째, 높은 금리와 경기 침체가 기업들의 비용 절감 움직임을 가속화했습니다. 2022년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했고, 경기 불확실성도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가장 먼저 고정비를 줄이려고 하는데, 오피스 임대료는 대표적인 고정비입니다. 넓은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보다 공간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현재 많은 기업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합쳐져 오피스 수요의 구조적인 감소로 이어진 것이죠. 특히 이런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코로나19가 앞당긴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한번 바뀐 업무 방식과 공간 활용 패턴은 쉽게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런데 왜 오피스 빌딩은 계속 지어질까?
"수요가 줄었다면, 공급도 줄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이게 많은 분들이 갖는 의문입니다. 강남에 가보면 여전히 새로운 고층 빌딩들이 올라가고 있고, 마곡이나 성수 같은 지역에서도 새 오피스 건물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부동산 개발의 시간차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피스 빌딩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토지 매입, 기획, 설계, 인허가, 시공 등 모든 과정을 거치려면 보통 3~5년, 때로는 그 이상이 걸립니다. 즉, 지금 완공되는 건물들은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인 2019~2020년경에 계획됐던 프로젝트들이라는 거죠. 그 당시에는 업무 공간 수요가 안정적이었고, 재택근무 같은 개념도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개발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죠.
둘째, 정부와 지자체의 산업 육성 정책도 한 몫 했습니다. 서울시는 강남 일극화를 해소하고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마곡, 창동, 성수, 양재 등 여러 지역을 '전략 거점'으로 지정하고 업무 시설 유치를 적극 장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종 인센티브와 용적률 완화 등이 제공되었고, 많은 개발사들이 이 기회를 활용해 오피스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책적 방향이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제 수요와의 괴리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셋째, 대규모 자본의 투자처로서 상업용 부동산이 주목받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연기금, 보험사, 부동산 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로 오피스 빌딩을 선호했습니다. 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시장 변동에 덜 민감한 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큰 변화는 이런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투자와 실수요 간의 불균형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피스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계속 이어지는 '타이밍 불일치'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마곡지구의 경우 SH공사 자료에 따르면 2028년까지 약 109만㎡의 오피스가 공급될 예정이지만, 실제 수요는 69만㎡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약 36%가 넘는 공간이 '과잉 공급'될 수 있다는 예측이죠.
지역별로 보는 오피스 공실 현황
서울의 오피스 공실 문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현실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도봉구 창동의 '씨드큐브 창동'은 현재 오피스 시장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서울 동북권 활성화와 청년 창업 지원을 목표로 건설된 이 건물은 2023년 7월에 준공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절반 이상이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고층부 몇 개 층은 입주 기업이 거의 없어 '유령 건물'이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예요. 입주한 기업들도 대부분 소규모 보험사나 사무대행업체에 그치고 있어, 당초 목표했던 '혁신 기업 유치'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입니다.
마곡지구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서울의 '서부 업무축'으로 육성 중인 이 지역은 삼성바이오로직스, LG 등 대기업 연구소가 입주해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중소형 오피스 건물들은 입주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건물들이 완공될 예정이어서, 공실 문제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어요. 전문가들은 "대기업 연구소와 함께 들어올 중소기업 협력사들의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고 분석합니다.
반면 강남이나 여의도 같은 전통적인 업무 중심지는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지만, 여기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입주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인기 있던 빌딩들도 이제는 공실률이 올라가고 있고, 임대료 협상에서도 세입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의 빌딩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이런 지역별 차이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위치'나 '새 건물'이라는 조건만으로는 더 이상 공실 걱정 없는 오피스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죠. 이제는 교통 편의성, 주변 인프라, 건물의 특성과 효율성 등 더 복합적인 요소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오피스 공실, 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을까?
"건물이 비어있으면 건물주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오피스 공실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선 금융 리스크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대형 오피스 빌딩은 개인 건물주가 자기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건설됩니다. 이른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죠. 만약 임대료 수입이 예상보다 적어지면, 대출금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부동산 PF 시장이 크게 확대된 만큼, 이 부분의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둘째, 지역 경제와 일자리 문제와 연결됩니다.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면 그 안에 입주한 기업들이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빌딩이 비어있으면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죠. 특히 도시 재생이나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추진된 프로젝트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역 간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도시 공간의 비효율성 문제입니다. 빈 건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 공간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동산은 한정된 자원이고, 특히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빈 공간이 많을수록 도시 전체의 활력은 떨어지고, 이는 결국 주변 지역 부동산 가치 하락, 세수 감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환경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빌딩 하나를 짓는 데는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가 투입됩니다. 그 건물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환경적으로도 큰 낭비가 될 수밖에 없죠. 빈 건물도 기본적인 관리와 유지를 위해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공실이 많을수록 '불필요한 탄소 배출'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오피스 공실 문제는 단순히 특정 건물주나 투자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경제, 사회,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 시급한 것이죠.
오피스 공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도시의 빈 공간을 채우고, 오피스 시장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몇 가지 가능한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오피스 공간의 다양화와 복합화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획일적인 사무실 공간에서 벗어나, 공유 오피스, 스마트 오피스, 창업 지원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야 합니다. 특히 단순 업무 공간이 아닌, 문화, 커뮤니티, 교육, 상업 등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어있는 오피스 공간의 일부를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센터, 공공도서관, 문화예술 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죠.
둘째, 기존 건물의 용도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오피스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일부 건물은 주거, 호텔, 물류 시설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피스 빌딩을 주거용 아파트나 호텔로 개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런 접근이 도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용도 변경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적 개선도 필요합니다.
셋째, 기술과 환경을 고려한 '스마트 그린 오피스'로의 진화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춰진 '스마트 빌딩'은 앞으로도 경쟁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도 리모델링을 통해 이런 방향으로 개선한다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거예요.
넷째,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접근이 필요합니다. 모든 지역에 같은 해법을 적용하기보다,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공간 활용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곡은 바이오, R&D 중심 기업들이 집적한 만큼, 연구개발 특화 시설로 방향을 더 명확히 하는 것이 좋을 수 있고, 성수는 창의적인 스타트업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방식이 있을 수 있죠.
마지막으로,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오피스 공실 문제는 시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세제 혜택, 규제 완화,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민간의 창의적인 공간 활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일부 공실은 공공이 직접 임대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오피스 공간도 함께 진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그 공간의 의미와 가치도 재정의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공실률 증가라는 위기는, 어쩌면 우리 도시 공간을 더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빈 공간이 주는 교훈, 도시는 사람을 위한 것
서울의 오피스 빌딩들이 텅 비어가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의 도시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지일 것입니다.
화려한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어도 그 안에 사람이 없다면, 그 도시는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단순히 '멋진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것보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소통하고, 삶을 영위할 것인가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얼마나 많이'에서 '얼마나 잘'이라는 가치로 도시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또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도시 계획이 중요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변화가 또 찾아올 수 있고, 기술 발전에 따라 공간 활용 방식도 계속 달라질 것입니다. 한 번 지어진 건물은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양한 용도로 전환 가능한 '적응형 건축'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건물의 가치는 결국 그곳에서 일어나는 인간 활동의 질과 양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지닌 부동산이라 할 수 있겠죠.
서울의 오피스 공실 현상은 분명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중요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앞으로 도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빈 공간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